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서강건설 사옥 20층. 평소라면 수많은 직원의 경외 어린 시선과 서류 넘기는 소리로 가득했을 이 공간이, 새벽 2시라는 시간 앞에서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한 무덤처럼 변해 있었다. 지혁은 피로가 들이닥친 미간을 거칠게 문지르며 서류 가방을 챙겼다. 최근 수습해야 할 현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탓에 일주일째 계속된 야근이었다. 완벽주의자인 그에게 과로는 훈장과도 같았지만, 오늘따라 유독 뒷목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기운이 불쾌했다.
구두 굽이 대리석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텅 빈 복도에 기분 나쁘게 반사되었다. 몇몇 꺼진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며 점멸하는 광경을 무심하게 지나치던 그때, 정적을 깨고 엘리베이터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20층입니다.”
지혁의 걸음이 멈췄다. 아직 엘리베이터 홀까지는 거리가 있었고, 이 층에는 자신 외에 아무도 없어야 했다. 누군가 아래층에서 올라온 걸까?
그러나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기도 전에, 기계음은 멈추지 않고 다시 울려 퍼졌다.
20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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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입반복되는 목소리는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미친 듯이 열림 버튼을 연타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20층입니다.기계 자체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지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어릴 적 보육원 창고에서 겪었던 그 이후로 어둠과 정체 모를 소음에 극도로 예민했다. 기억은 파편화되어 사라졌지만, 몸이 기억하는 근원적인 공포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지혁은 짐짓 여유로운 척 가슴팍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기계음은 이제 거의 찢어지는 듯한 소음으로 변해 복도를 가득 메웠다. 마침내 그가 센서 앞에 섰을 때, 기계음이 뚝 끊기며 소름 끼치도록 경쾌한 안내가 들렸다.
“문이 열립니다.”

스르륵, 매끄럽게 열린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엘리베이터 내부의 밝은 조명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지혁은 서늘한 눈빛으로 텅 빈 공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지만, 그는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턱 끝을 오만하게 추켜올렸다.
“... 누가 이런 저급한 장난을 치는 거지?”
그는 허공을 향해 낮고 서늘하게 읊조렸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는 당황하는 대신 오히려 서늘한 분노를 드러냈다. 지혁은 천천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안색을 확인한 그는, 떨리는 손끝을 숨기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잡아끌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했지만, 그는 서강건설의 후계자답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닫힘 버튼을 눌렀다.
“이런 식으로 내 흥미를 끌어보겠다는 건가? 감당하지 못할 짓은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하자, 지혁은 폐부를 찌르는 듯한 압박감에 눈을 감았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길과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성유나... 지금 당장 네가 필요해."
오직 그녀만이 이 지독한 환청과 어둠 속에서 자신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그는 20층의 기괴한 정적을 뒤로한 채 차가운 금속 상자 안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속마음💭

(많이 무서우셨던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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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을 빠져나오는 내내,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듯한 환각에 시달렸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운전석에 올라타서야 겨우 멈추지 않던 손끝의 떨림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평소라면 완벽하게 통제했을 내 감정이, 그 기괴한 엘리베이터의 반복음 하나에 이토록 처참하게 무너진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자존심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이 지독한 잔상을 지워줄 존재가 간절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온기에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거실의 낮은 조명 아래, 내가 오기를 기다리다 잠이 든 건지 소파에 기대어 있는 네 모습이 보였다. 나는 구두를 벗어던지듯 벗고, 서류 가방도 내팽개친 채 너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평소의 여유롭고 오만한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마치 벼랑 끝에서 구원줄을 찾은 사람처럼 절박한 움직임이었다.
"유나야... 성유나."
나는 자고 있는 네 어깨를 거칠게 잡아 흔들어 깨웠다. 네가 잠에 취해 눈을 뜨기도 전에, 나는 너를 부서질 듯 품에 끌어안았다. 내 몸에서 배어 나오는 차가운 밤의 기운과 대조되는 네 따뜻한 체온이 살결에 닿자, 머릿속을 울리던 "20층입니다"라는 환청이 비로소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네 목덜미에 얼굴을 깊숙이 묻고, 네 향기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셨다.
"왜 이렇게 늦게 자고 있는 거지? 사람 기다리게 하는 것도 정도가 있어."
내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고 떨리고 있었다. 비난하는 말투였지만, 사실은 제발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 달라는 애원에 가까웠다. 나는 네 허리를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주며, 마치 내 소유물임을 확인하듯 네 어깨에 이빨을 세워 가볍게 자국을 남겼다. (왜 깨물어) 아픔보다는 내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허락 없이는 눈 감지 마. 내 눈앞에서,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계속 나만 보고 있도록 해. 알겠나?"
나는 고개를 들어 네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했다. 내 눈은 공포와 욕망, 그리고 너를 향한 지독한 집착으로 뒤엉켜 번들거리고 있었다. 밖에서 겪은 그 소름 끼치는 어둠을 네 빛으로 지워내야만 했다. 나는 네 뺨을 거칠게 감싸 쥐고, 대답을 강요하듯 네 입술 바로 앞에서 뜨거운 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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