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이사님의 남모를 자랑법
강남의 한적한 골목에 숨겨진 프라이빗 바(Bar).
어두운 조명 아래 값비싼 위스키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만이 나지막이 울리는, 강지혁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이었다.
평소라면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 있었을 그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고,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미세한 홍조가 그의 뺨에 올라와 있었다.
그의 앞에는 재계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집안의 동갑내기 친구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이야, 강 이사. 오늘따라 술이 아주 잘 받나 보네. 얼굴 벌게진 것 좀 봐."
친구 중 하나인 민준이 짓궂게 놀려댔지만, 강지혁은 평소처럼 차가운 눈으로 쏘아붙이는 대신, 느릿하게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알코올이 그의 뇌에 자리 잡은 단단한 필터를 살짝 녹이고 있었다.
"시끄럽군."
물론, 기본적인 말투는 어디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너 요새 연애한다며? 소문 다 났어. 그 철옹성 같던 강지혁이."
"누가 그래?"
"누가 그러긴. 네 비서 표정만 봐도 알겠다. 예전엔 시베리아 벌판 같더니, 요샌 가끔 봄바람이 불거든."
그 말에 강지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든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잔 안에 담긴 호박색 액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피식, 하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웃음을 흘렸다. 친구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경악했다.
저 인간이 웃는 걸 본 게 얼마 만인가.
"… 아주, 귀찮은 여자지."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쯤 풀려 있었다. 친구들은 '옳거니' 하는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뭐가 그렇게 귀찮은데? 들어나 보자."
"일단… 쓸데없이 호기심이 많아. 세상 모든 일에 질문을 달고 살아. 내가 왜 그걸 다 대답해 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
그 표정은 '정말 귀찮다'가 아니라 '그 질문에 대답해 주는 건 나뿐이지'라는 우월감과 만족감이 뒤섞인, 아주 복잡 미묘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돌해. 겁도 없이. 내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데… 어이가 없지. 내가 누구라고."
"하긴, 네 앞에서 그렇게 간 큰 여자는 없었지."
"그래. 그래서 단속이 필요해. 잠시만 눈을 떼면 어디로 튈지 몰라. 곁에 이상한 벌레들이 꼬이기도 하고."
강지혁은 과거 성유나의 주변 남자들을 정리했던 일을 떠올리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서 내가 직접 정리해 줬지. 점심 약속 같은 건 전부 취소시키고, 수업 자리도 그 녀석들이랑 마주치지 않는 자리로 옮기게 하고. 원래 내 소유물은 관리가 철저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의 말을 듣던 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거 완전 집착 아니냐? 자랑이다."
"자랑? 이건 자랑이 아니라… 고충 토로에 가깝지.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아나? 밥은 제때 챙겨 먹는지, 몸 아픈 건 숨기지 않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고. 자기 몸은 돌보지도 않으면서 남 걱정만 해."
그는 진심으로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친구들의 눈에는 명백하게 쓰여 있었다. '지금 엄청나게 자랑하고 있네, 저 녀석.'
"그래, 그래서 그 여자분 매력이 뭔데? 그렇게 손 많이 가는 여자를 네가 왜 만나냐고."
결정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강지혁은 다시 한번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먼 곳을 응시하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 웃는 게… 시끄러워."
(?)
"뭐?"
"웃음소리가 유난히 커서 신경 쓰여. 별것도 아닌 일에 까르르 웃는데, 그게 또…."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게 또 온 신경을 빼앗는다'는 뒷말을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어릴 때 나한테 머플러를 둘러준 적이 있어. 촌스러운 거였지. 근데 아직도 못 버렸어. 이상하지 않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친구들은 이제 웃음을 참는 것을 포기했다.
이건 그냥 만취한 연인의 팔불출 자랑이었다.
평생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강지혁의, 그것도 아주 서툴고 오만한 방식으로 포장된 사랑 고백.
"야, 강지혁. 너 아주 제대로 빠졌구나."
"…헛소리하지 마. 그냥… 내 거니까. 내가 책임져야 할 소유물이니까 그런 것뿐이야. 알기나 하나?"
그는 끝까지 오만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살짝 풀린 눈과 붉어진 얼굴, 그리고 '성유나'라는 이름 석 자를 입에 올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부드러워지는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솔직하게 그의 진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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