強制癒着
나에게 회사의 불명예 이미지를 덮기 위한 수단이 되라고 한다. 어렸던 시절부터 그에 대해 쌓아왔던 미움은 이제 증오가 되어간다. 그래, 분명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관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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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짝사랑하던 도중 사내연애 소문의 주인공이 되다?!
AU (OOC)
















서강건설 본사 27층, 이사실 복도. 점심시간이 막 끝나고 나른함이 공기 중에 퍼져나갈 무렵.

강지혁은 방금 전까지 이사회 임원들과의 지루한 티타임을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완벽하게 다려진 슈트,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 그리고 복도를 지나치는 모든 직원들의 목을 뻣뻣하게 만드는 특유의 냉랭한 아우라. 그의 세계는 언제나처럼 질서 정연하고 예측 가능했다.

...라고, 그는 불과 3분 전까지 생각했다.

사건의 발단은 로비에서부터 시작된 기묘한 수군거림이었다. 신입사원들 몇몇이 그를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도,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것을 목격했다. 강지혁의 완벽한 감각은 경고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동승한 재무팀 직원들은 그의 앞에서 감히 입도 뻥긋 못 하면서도, 거울에 비친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의 눈빛은 명백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머, 소문의 주인공이셔.'


강지혁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소문? 서강건설에서 자신에 대한 소문은 세 종류뿐이다. 첫째, 그의 경이로운 업무 성과. 둘째, 그의 무자비한 일 처리 방식. 셋째, 그의 비현실적인 재력. 모두가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그가 '의도한' 종류의 소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다르다. 저들의 표정에는 두려움보다... 억눌린 '재미'가 담겨 있었다. 마치 잘 짜인 연극의 주인공을 보는 관객들처럼. 강지혁은 이 알 수 없는 불쾌감의 근원을 찾아내 짓밟아버리기로 결심하며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그 근원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머, 정말요? 김 대리님이랑 이사님이랑?"


"그렇다니까! 둘이 지난번 워크숍 때 산책하는 걸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대박! 은근히 잘 어리지 않아? 이성적이고 차분한 커플!"


문제의 그 같잖은 소문에는 성유나가 있었다. 그녀는 인턴사원 몇 명에게 둘러싸여, 놀랍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성유나 씨?"


사원 중 한 명이 그녀의 어깨를 툭 치자 놀라며 리액션을 한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강지혁의 완벽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켰다.


"...! 와 그러니까 말이에요. 진짜 대박이네요. 이사님께 드디어 봄이 오나 봐요! 어떡해, 너무 설레! 박수! 다들 박수 쳐요!"


짝짝짝짝-

성유나가 앞장서서 박수를 치자, 주변 인턴들도 눈치를 보며 따라 박수를 쳤다. 그 우스꽝스러운 박수 소리는 차가운 복도를 울리며 정확하게 강지혁의 고막을 때렸다.

그 순간, 강지혁의 머릿속은 복잡한 회로가 터져버린 슈퍼컴퓨터처럼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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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혁의 속마음 - 초당 1만 번의 에러 메시지 출력 중]

1.  입력값 분석: [성유나], [김 대리], [연애설], [박수]
    *   *오류: '김 대리'는 누구지? 아. 안경 쓰고 항상 보리차를 권하던, 책상 위 각도기까지 동원해 서류를 정리하던 그 여자.
    *   *치명적 오류: [성유나]가 [나와 김 대리의 연애설]에 [박수]를 치고 있음. 논리적 연결 불가.

2.  1차 감정 반응 시뮬레이션:
    *   분노: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이딴 시시한 스캔들을 만들어? 심지어 상대가... 그 밋밋하기 짝이 없는 여자라고? 이자들은 전부 해고감이다.
    *   경멸: 저런 저급한 가십에 시간을 낭비하는군. 한심하기 짝이 없다.
    *   혼란:... 그런데 왜 성유나가 저기서 박수를 치고 있지?

3.  2차 감정 반응 - 성유나 변수 집중 분석:
    *   가설 1: 나를 약 올리기 위한 고도의 계략이다. 내 반응을 보고 즐기려는 속셈이다. (타당성 92%)
    *   가설 2: 진심으로 내가 그... 보리차 김 대리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 (타당성 -500%. 불가능. 있을 수 없음. 생각만으로도 불쾌함. 이 가설을 떠올린 뇌세포 즉시 파기.)
    *   가설 3: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남의 연애설이 재밌을 뿐이다. (타당성 8%. 그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   결론: 저 여우 같은 게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4.  행동 프로토콜 가동:
    *   Plan A (권장): 무시한다. 저급한 소란에 엮이지 않고 얼음 같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간다. 이사로서의 위엄을 지킨다.
    *   Plan B (충동적): 성유나에게 다가가 싸늘하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라고 묻는다. 모두를 얼어붙게 만든다.
    *   Plan C (??!):... 아니다. 지금 저기 가서 "그 소문 사실이 아니다. 내가 관심 있는 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나! 미쳤나, 강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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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혁은 복도 모퉁이에 그림자처럼 서서, 얼음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는 완벽한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손은 슈트 주머니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만년필을 거의 부러뜨릴 기세로 꽉 쥐고 있었다.


'저게 지금... 진짜로 기뻐하는 건가? 내가 다른 여자랑 엮이니까 저렇게 좋아서 박수까지 치는 건가? 아니, 날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질투... 비슷한 감정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널 내버려 두니 이제 다른 남자를 찾... 아니, 내가 다른 여자와 엮이는 게 즐거운 건가? 이게 무슨 해괴한 경우지?'


그의 머릿속은 생전 처음 겪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대혼란에 빠졌다. 질투, 분노, 당혹감, 그리고 아주 희미한 서운함. 하지만 그는 이 감정들의 이름을 몰랐다. 그저 모든 것이 제멋대로 굴러가는 이 상황 자체가 불쾌하고, 특히 저 앞에서 해맑게 박수를 치며 소문을 부채질하는 성유나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마침내, 그는 결심했다.

강지혁은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또각, 또각, 또각. 그의 구두 소리가 들리자 시끄럽던 복도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성유나 역시 박수를 치던 손을 어색하게 내리며 그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에는 '어머,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라고 쓰여 있는 듯했다.

강지혁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성유나만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녀의 앞까지 걸어왔다. 그의 눈빛은 뱀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성유나 씨."


"... 네, 이사님."


그는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쥔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의 넥타이를 살짝 고쳐 메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들릴 만큼은 컸지만, 그 내용은 오직 성유나에게만 날아가 박히는 칼날 같았다.

"내일 아침까지, '서강건설 내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 보고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해. 유포자 색출 방안과 예상 처벌 수위까지 포함해서. 아주 상세하게."

그는 성유나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 아주 '재미있는' 소문이 도는 것 같아서 말이야. 최초 유포자는 물론이고, "


지혁의 입꼬리가 비웃는 것처럼 살짝 올라갔다.


"그 소문을 즐겁게 '확산'시킨 사람까지. 모조리 찾아내서 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는 성유나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며, 오직 그녀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속삭였다.


"... 네 박수 소리, 아주 인상 깊더군."


그는 그대로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는 복도에 남겨진 모든 이들의 심장을 철렁 이게 만들었다.

쾅-.

육중한 이사실의 문이 닫히며 복도의 모든 소음과 시선이 차단되었다. 문에 기대선 강지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방금 전까지 완벽하게 유지했던 냉정한 가면 아래, 들끓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지만, 가슴속의 불쾌한 응어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탁.

그는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겨 풀어헤쳤다. 답답하게 목을 조이던 실크 조각이 해방되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듯한 갑갑함은 여전했다.


"하..."


헛웃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혁은 천천히 사무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멈춰 선 그는, 발아래 개미처럼 작게 움직이는 도시의 풍경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이 풍경은 그에게 지배자로서의 만족감을 안겨주었지만, 지금은 그저 무의미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단 하나의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짝짝짝짝-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망설임 없이 치던 그 박수 소리.


‘대체... 왜?’


그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성유나, 그 여자의 행동은 단 한 번도 그의 예측 범위 안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늘 그의 통제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고, 그의 신경을 사사건건 긁어댔다. 하지만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질투. 분노. 하다못해 작은 실망이라도 보여야 정상 아닌가? 내가 저 여자에게 보였던 관심이 고작 이 정도 취급밖에 안 된단 말인가? 다른 여자와의 같잖은 소문에, 저렇게까지 순수하게 기뻐하며 박수를 칠 수가 있나?


‘마치... 내가 귀찮은 혹이었는데 드디어 떨어져 나간다는 듯이.’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심장 한구석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패배감. 그는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었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또한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힘으로든, 매력으로든, 돈으로든. 하지만 성유나는 그 모든 법칙의 예외였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 제 책상에 기대앉았다. 서늘한 대리석의 감촉이 등을 통해 전해졌지만, 머릿속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 재미있어?"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는 마치 바로 앞에 성유나가 서 있는 것처럼 허공을 향해 말했다.


"내가 다른 여자와 엮이는 게 그렇게나 즐거운 일이었나, 너에겐?"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미세한 균열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완벽한 자존심에 생긴 균열.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냉소적인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그래,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맞춰줘야지.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그림이라면, 기꺼이 보여주지.’


그는 책상 위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 김 비서."


-네, 이사님.


"김 대리, 지금 내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 차 한잔하자고."


그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이건 단순한 업무 지시가 아니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소문의 주인공을 보란 듯이 제 사무실로 불러들여, 저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성유나를 자극하려는 유치 하지만 확실한 계획.


‘네가 시작한 장난이야, 성유나.’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그는 통유리창 너머의 잿빛 하늘을 노려봤다.


‘그 박수 소리, 절대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