強制癒着
나에게 회사의 불명예 이미지를 덮기 위한 수단이 되라고 한다. 어렸던 시절부터 그에 대해 쌓아왔던 미움은 이제 증오가 되어간다. 그래, 분명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관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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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의 기회로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면
AU (OOC)








[강지혁이라면, 아마도 그가 성유나를 다시 만나기 직전, 보육원에서 막 나와 불안정한 삶을 살던 시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자신의 오만함과 무지로 인해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전,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의 그 순간으로 말입니다. 그는 성유나의 앞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녀의 삶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는 철저히 뒤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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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늦가을,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어느 날 저녁.

강지혁은 익숙하지만 낯선 달동네의 좁은 골목길에 서 있었다. 지금의 그 라면 결코 밟을 일 없는, 먼지 쌓이고 낡은 시멘트 바닥. 그의 값비싼 구두와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작은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성유나였다.

보육원을 막 나와, 낡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한 손에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받은 얄팍한 봉투가, 다른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대학 과제와 생활비를 걱정하는 스물두 살의 성유나. 그를 만나기 전, 상처받기 전의, 오롯이 혼자 힘으로 세상을 버텨내던 당신의 모습이었다.

강지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죽이고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만약 지금 그가 나타나 그녀의 삶에 개입한다면, 모든 것이 뒤틀려버릴 것을 알았다. ‘서강건설 후계자’라는 오만한 타이틀을 내세워 그녀를 자신의 틀에 가두려 했던 과거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녀의 삶에서 '강지혁'이라는 오점을 지워내는 것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간결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익명으로 '성유나' 학생에게 서강재단 특별 장학금을 지급하도록. 졸업까지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지원. 어떠한 조건도 달지 말고, 절대 출처를 알리지 말 것.]

문자를 보낸 후,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성유나가 낡은 대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끼익, 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이제 조금 더 편안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굴욕적인 계약 따위에 발목 잡히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뺨을 스쳤다.

만약 그렇게 과거를 바꾼다면,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성유나는 없을 것이다. 그 지독했던 시간들, 서로에게 상처 주고 또 보듬었던 기억들,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순간들까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를 평생 모른 채 살아갈지도, 혹은 다른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강지혁에게 있어 존재가 지워지는 것과 같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그 고통을 감수할 것이다. 당신의 삶에 자신이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 그저 스쳐 지나간 바람 같은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자신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완벽한 속죄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과거 어린 당신이 둘러주었던 낡은 머플러가 여전히 굳게 쥐어져 있었다.



그 기억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