強制癒着
나에게 회사의 불명예 이미지를 덮기 위한 수단이 되라고 한다. 어렸던 시절부터 그에 대해 쌓아왔던 미움은 이제 증오가 되어간다. 그래, 분명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관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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⁰ ⁵ · ⁰ ⁵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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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에는 여름 작가님의 네가 내 안에서 부서지길 바라 소설 내용의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람 전 유의 바랍니다.

















⁰⁵·⁰⁵
EP1. 어린이가 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5월의 싱그러운 햇살이 침실을 환하게 비추었다. 어린이날의 푸른빛이 가득한 아침, 평소라면 지혁의 단단한 팔에 안겨 기분 좋은 무게감을 느끼며 눈을 떴어야 할 유나였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느껴지는 감각은 평소와 전혀 달랐다.

시야가 평소보다 훨씬 낮았다. 그리고 몸이... 몸이 너무나도 가볍고, 동시에 낯설었다. 마치 온몸의 뼈가 말랑말랑해진 듯한 느낌. 유나는 당황하여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성인의 섬세하고 긴 손가락 대신, 갓 구운 빵처럼 작고 통통하며 뽀얀, 아이의 손이 있었다.



"이게... 무슨...?"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유나의 것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높고 앙증맞은, 꾀꼬리 같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유나는 경악하며 옆을 돌아보았다. 어젯밤, 자신의 몸을 든든하게 받쳐주던 그 넓은 어깨와 단단한 가슴팍은 어디로 갔을까.

그 자리에는, 커다란 베개에 파묻힌 채 쌔근쌔근 잠든 아주 작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헝클어진 까만 머리카락,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통통한 볼, 그리고 옅은 숨을 내쉴 때마다 오르내리는 작은 어깨. 어제의 그 오만하고 서늘했던 강지혁 이사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동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귀여운 꼬마 아이가 누워 있었다.



"... 어?"



유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꿈인가? 아니면 어젯밤의 그 황당한 농담이 정말로 어떤 마법이라도 부린 건가? 유나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짧아진 팔을 만져보았다. 분명히 이건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작은 생명체가 움찔거리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뜨기 시작했다. 꼬마 지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마치 원래부터 이 작은 몸이 제 것인 양 익숙하게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옆에 있는 '작은 유나'를 발견하고는,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으음... 유나...?"



지혁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낮게 깔리는 저음이 아니라, 아주 맑고 높은, 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눈을 깜빡거리다가, 자신의 짧아진 팔다리를 내려다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내... 내 손이 왜 이래? 유나야, 너... 너 왜 이렇게 작아졌어?"



꼬마 지혁은 겁에 질린 듯한 눈으로 유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제의 그 카리스마 넘치던 눈빛은 어디 가고, 지금은 그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당황해하는 꼬마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지혁은 헉헉거리며 짧은 다리를 휘저어 침대 위를 굴렀다.



"이게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유나야! 이거 꿈이지? 응? 빨리 꿈이라고 말해줘...!"



작아진 지혁은 울먹이며 유나의 옷자락을 꼬물거리는 작은 손으로 꽉 붙잡았다. 어린이날, 두 사람에게 찾아온 이 말도 안 되는 마법 같은 현실 앞에, 침실에는 꼬마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그들에겐 옷도 너무 커져버려 거의 옷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눈은 동공지진이 일어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도... 저도 몰라요 이게... 뭐야."



심각한 와중 그가 어린아이로 변하여 울먹이는 표정이 귀엽고 웃겼다.



"... 푸하하."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는다.

어린아이라서 뇌도 어린이가 되었나 감정조절이 쉽지 않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아 지혁 씨... 너무 울먹이시는 거 아녜요? 귀여워라 하..."



커다란 셔츠 속에 파묻혀 꼬물거리는 유나의 모습은 마치 하얀 눈밭에 떨어진 작은 꽃송이 같았다. 유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웃음소리는 맑고 높은 실로폰 소리처럼 침실에 울려 퍼졌다. 평소라면 절대 보이지 않았을,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유나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지혁은 더 큰 패닉에 빠졌다.



"지금... 웃음이 나와?! 유나야, 너 지금 이 상황이 웃겨?!"



꼬마 지혁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를 빽 질렀다. 평소의 그 위압적인 명령조는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그저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앙탈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는 커다란 이불 뭉치 속에서 짧은 팔을 휘저으며 유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지만, 그 동작마저 너무나도 몽글몽글하고 귀여워서 공격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몰라서 그래? 우리가... 우리가 갑자기 이렇게... 이렇게 쪼끄맣게 되어버렸는데! 내, 내 목소리는 또 왜 이 모양이고! 내 키는 왜 이 모양이야!"



지혁은 억울함에 북받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유나의 웃음소리에 멈칫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비록 눈매는 여전히 날카로우려 애쓰고 있었지만, 통통한 볼살 때문에 그 위엄은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너...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귀엽다고? 내가... 내가 지금 네 앞에서 울먹이니까 귀엽다고 하는 거야?!"



그는 씩씩거리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서려 했지만, 짧아진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이불 뭉치와 함께 '툭' 하고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지혁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침대 시트를 작은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분노를 표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나의 눈에는 그저 솜방망이로 침대를 두드리는 강아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웃지 마! 성유나, 너 지금 당장 안 멈추면... 내가... 내가 진짜 화낼 거야! 확... 확 잡아먹어 버릴 거라고!"



지혁은 씩씩거리며 유나를 향해 달려들려 했으나, 이내 멈칫하며 멈춰 섰다. 그는 자존심이 상해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도,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유나의 모습이—비록 상황은 엉망진창이지만—너무나도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씩씩대는 숨을 몰아쉬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유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하... 진짜... 너는 정말... 못 말리겠군.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다니. 너 정말... 보통 애가 아니야."



그는 툴툴거리면서도, 유나의 옆자리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고는 쿵쾅거리는 작은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듯, 유나의 작은 손을 덥석 잡았다. 손바닥이 닿는 감촉이 너무나 작고 부드러워, 지혁은 다시 한번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웃어. 네가 웃으니까... 나도 조금은 덜 무서운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유나야, 나중에 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면... 그때는 이 일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물을 거야. 알겠어?"



그는 괜히 센 척하며 엄포를 놓았지만, 유나의 손을 잡은 작은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혁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유나의 옆에 딱 붙어 앉아 그녀의 작은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슬며시 기대었다.



"근데 과연 돌아오긴 할까요? 하루 만에 다시 원상 복귀된다는 중거도 없고요."



"뭐 10년 넘게 지나면 다시 원상복귀는 되겠지만... 그건 싫잖아요."



"그리고 오늘 지혁 씨 회사는 어떡해요? 아니 우린 누가 돌봐요? 지혁 씨 비서 불러서 우리 좀 도와달라 할까요?!"



유나의 현실적인, 아니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진 듯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넘게 지나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지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입을 벌렸다.



"10... 10년?! 유나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10년 동안 이렇게... 이렇게 꼬맹이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지혁은 경악하며 유나의 어깨를 흔들려했지만, 자신의 팔이 너무 짧아 겨우 유나의 팔꿈치 언저리에 닿는 것을 보고는 좌절하듯 고개를 푹 떨궜다. 10년이라니.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 서강건설의 후계자로서의 지위, 그리고 무엇보다 유나를 멋진 성인 여성으로서 품에 안고 지켜주던 그 모든 권력이 이 작은 몸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절망케 했다.



"내 회사가... 내 비서가... 하... 말도 안 돼. 비서를 부른다고? 그러면 비서가 우리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어? '이사님이 갑자기 애가 되어서 나타났다'라고 보고라도 하라는 거야?!"



지혁은 뒷머리를 짚으며 괴로운 듯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내 유나의 말 중에서 '누가 우리를 돌봐주느냐'는 부분에 이르자, 그는 다시금 차가운 현실 앞에 멈춰 섰다. 꼬마 지혁의 눈에 서늘한 이성과 함께 약간의 막막함이 스쳤다. 지금 이 꼴로 밖에 나갔다가는 경찰서에 가거나, 동물원 유아실에 갇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서는커녕, 지금 당장 우리 둘이 이 커다란 옷더미 속에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도 문제야. 유나야, 너... 너도 지금 판단력이 흐려진 건 아니지? 10년이라니, 그런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마. 제발..."



그는 유나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마치 그녀에게 매달리듯 말했다. 평소의 오만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유나에게 의지해 해결하고 싶은 어린아이의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지혁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채, 유나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회사 문제는... 일단 나중에 생각해. 지금 당장은... 일단 여기서 탈출하는 게 우선이야. 이 옷들... 너무 무거워서 움직이기 힘들어. 그리고..."



지혁은 슬쩍 유나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웅얼거렸다. 그의 작은 얼굴이 다시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너도 지금 너무 작아서... 내가... 내가 너를 안아줄 수가 없잖아. 어떡하면 좋지?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유나야?"



그는 정말로 방법을 모르는 듯,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유나를 바라보았다. 꼬마 지혁의 눈에는 이제 공포보다는,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과, 동시에 유나와 이렇게 '같은 눈높이'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에 대한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둘 다 작으니까 안을 수 있찌!"



그녀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를 안는다.

그의 몸은 성인이었을 때보다 한참 작고 연약했지만 온기는 똑같았다.



"그래, 작으니까... 이렇게 안으면 딱 맞네."



*지혁은 유나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랑 똑같네."



그가 선우라는 아이로 나와 같이 보육원에서 지냈을 무렵 그 모습과 똑같았다. 같은 사람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울컥해졌다.

울컥해졌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울고 있었다. 감정조절이 쉽지 않은가 보다.



"흑... 흐윽...."



"선우... 선우야..."



"선우야아아아... 미안해... 창고에 너만 두고 나와서..."



유나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봇물 터지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혁은 당황하여 유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유나야? 왜 그래? 갑자기 왜 울어... 응? 내가 뭐 잘못했어?"



그러나 유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지혁의 것이 아니었다. '선우'.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지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혁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지금 유나가 부르는 이름은, 이 몸을 빌려 나타난 과거의 조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조각이 향하는 곳은, 지혁이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러나 스스로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그 어둡고 뜨거웠던 화재의 현장이었다.

창고에 홀로 남겨졌던 아이. 불길 속에서 울부짖던 그 아이. 지혁은 유나의 오열을 들으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통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기억 속에 봉인되어 있던 타오르는 불꽃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고통이었다.



"유나야... 유나야, 정신 차려. 나야, 지혁이야... 아니, 선우... 아니, 지혁이라고!"



지혁은 유나를 달래려 애썼지만, 아이의 몸으로는 그녀의 격정적인 슬픔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유나는 지혁을 껴안은 채, 마치 그 옛날의 창고 속에 갇힌 아이처럼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지혁은 유나의 떨리는 등을 작은 손으로 토닥이며, 자신 또한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울지 마... 제발 울지 마, 유나야... 흐윽..."



지혁은 유나의 이름을 부르려다, 자신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유나의 눈물이 자신의 옷을 적시는 것을 느끼며, 지혁은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에 휩싸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죄가, 지금 이 작은 몸을 통해 유나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유나를 더 꽉 끌어안았다. 마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유나가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지혁은 유나의 젖은 뺨에 자신의 작은 얼굴을 비비며,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유나야. 나 여기 있어. 네 옆에... 내가 있잖아. 그러니까 제발... 그 무서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마. 응? 내가... 내가 너를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약속해..."



지혁은 유나의 통곡 소리에 맞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몸이기에 더 조절되지 않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작은 아이는 서로를 붙잡은 채, 길고 어두웠던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함께 떨고 있었다.



"흑... 흐윽..."



그녀는 오열을 하다가 멈춘다.



"... 배고파."



지혁은 유나의 갑작스러운 오열에 함께 가슴을 쥐어짜며 울다가, 너무나도 뜬금없이 들려온 그 세 글자에 눈물을 뚝 그쳤다. 그는 눈가에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멍하니 유나를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지옥 같은 화마 속에서 서로를 구원하던 비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았는데, 갑자기 현실로 툭 떨어진 기분이었다.



"배... 배고프다고?"



지혁은 훌쩍거리며 소매로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아이의 피부라 그런지 조금만 문질러도 볼이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어안이 벙벙한 듯 유나를 보다가, 이내 자신의 배에서도 '꼬르륵' 하고 아주 작고 귀여운 소리가 들려오자 얼굴을 홧홧하게 붉혔다.



"하... 정말이지, 성유나. 너는 이 상황에서... 그, 그래. 나도... 나도 조금 배가 고프긴 하네. 아이 몸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금방 허기가 지는 거지?"



그는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 끝으로 향했다. 하지만 바닥까지의 높이가 평소보다 훨씬 높아 보여 지혁은 주춤하며 멈춰 섰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큰 셔츠 자락을 질질 끌며 유나를 돌아보았다.



"근데... 우리가 이 몸으로 뭘 먹을 수 있지? 주방까지 가는 것도 일이야. 가스레인지는커녕 식탁 의자에 올라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리고... 그리고 나, 요리 같은 거 할 줄 모른단 말이야!"



지혁은 억울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라면 비서에게 시키거나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겠지만, 지금은 시리얼 상자 하나 꺼내는 것도 거대한 모험이 될 판이었다. 그는 다시 유나의 곁으로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유나야, 냉장고에 바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거... 뭐 없나? 우유라든지, 아니면 어제 먹다 남은 과일이라든지... 설마 내가 이 나이에 직접 밥을 지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지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배고파하는 유나가 신경 쓰이는지, 그는 커다란 셔츠 소매 속에 숨겨진 작은 손을 뻗어 유나의 머리를 엉성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기다려 봐. 내가... 내가 어떻게든 먹을 걸 찾아볼 테니까. 넌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 알겠어? 이 몸으로 돌아다니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지혁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침대 아래로 내려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27살 차기 후계자의 자존심은 어디 가고, 오직 '아내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눈을 반짝이는 꼬마 지혁의 모습은 퍽 비장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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