強制癒着
나에게 회사의 불명예 이미지를 덮기 위한 수단이 되라고 한다. 어렸던 시절부터 그에 대해 쌓아왔던 미움은 이제 증오가 되어간다. 그래, 분명 증오와 혐오로 점철된 관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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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유성우 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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𝟐𝟎𝟐𝟓-𝟏𝟐-𝟏𝟑

Y.n: 오늘은 12월 13일이다. 12월 13일 밤 ~12월 14일 새벽까지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절정에 달하며 맨눈으로 보기 가장 좋은 날이라고 한다. 비록 그와 다투고 난 후라 아직 어색하고, 요새 일이 많아서 바쁜 것 같지만...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과연 같이 볼 수 있을까?








***







수많은 숫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문단을 검토하며 피로에 잠긴 눈을 억지로 깜박였다.

늦은 시간, 고요한 사무실에는 내 숨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던 그때, 책상 위에 엎어둔 핸드폰이 짧게 진동하며 고요를 깼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 '성유나'.

그 세 글자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이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마치 깨지기 쉬운 보물이라도 다루는 듯한 손길이었다. 화면에 뜬 짧은 문장.




...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그 단순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이건 단순히 귀가 시간을 묻는 사무적인 연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멋대로 희망을 품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눌렀다. 몇 번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너무 갑작스러웠나? 너무 앞서나갔나? 하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며칠 전, 그녀가 무심코 흘렸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유성우가 잘 보인다던데...'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답장을 기다리는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애꿎은 넥타이만 만지작거리며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상 위 서류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 신경이 오직 그녀의 대답에만 쏠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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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실 소파에 있던 성유나는


띵-


문자 알림 소리가 들리자 폰을 들고 그의 문자내용을 훑어본다.


["응 좀 늦을 것 같아, 혹시 괜찮으면 오늘 밤에 유성우 보러 갈까?"]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 채 먼저 유성우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 그의 문자를 보고, 놀라운 듯이 폰을 5초 이상 뚫어져라 쳐다본다.

...


'내가 아는 강지혁이 맞나?'


'맨날 별 감흥 없는 척, 관심 없는 척하더니... 다 신경 쓰고 있나 보네'


하긴 그는 내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원하든 모든 것을 다 알아내려고 했다.


'너무 심해서 탈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바꾸겠다는 지난번의 다짐은 정말이었나 보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답장을 보낸다.



[아 안 그래도 그 말하려고 했어요.]



[12월 13일 밤에 쌍둥이자리 유성우가 맨눈으로도 직접 볼 수 있대서...]



그 두 문자를 보내고 고민하다가 문자를 덧붙인다.



[같이...]



[같ㅇ]



......



[]



문자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지막 문자는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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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 석 자에 덩그러니 남은 점 세 개, 그리고 이어진 너의 답장을 보는 순간,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 안 그래도 그 말하려고 했어요' 라니... 네가 먼저 유성우 이야기를 꺼내려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이어진 네 메시지에, 다시금 긴장감이 맴돌았다. [같이...] 라던 문장이 결국엔 지워지고 만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나 때문에 네가 머뭇거린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예전 같았으면 "왜 끝까지 말하지 않는 거지?" 하고 다그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네게 강요하는 대신,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뇌었다. 내가 한 질문에 네가 답할 차례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번에는 아주 짧게 답장을 보냈다. 모든 감정을 담는 대신, 간결하게 핵심만 전달하려 노력했다.




말끝에는 늘 쓰던 물음표를 붙이는 대신, 왠지 모르게 평범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변화를, 그리고 너에게 던지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답장을 보내고 나니, 아까보다 더욱 간절해졌다. 이번에는 네가, 선뜻 '같이'라는 말을 완성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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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나는 그 문자에 잠시 고민한다.



"어디서 만나지..."



아무리 유성우를 맨눈으로 발견할 수 있다 해도 도심의 인공적인 빛들이 서로 뿜내면서 뻔뜩이는 이 공간에선 별빛이 잘 안 보일 것 같았다.



'못 볼 거 같은데... 아쉽네'



그렇게 약속을 취소할까 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그러고 보니 전에 같이 언덕에서 피크닉을 즐긴 적이 있었는데...'



도심의 불빛들이 비교적 닿지 않는 그곳은 별이 잘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연락을 보낸 후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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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낸 메시지에 눈을 고정한 채, 나는 숨을 죽였다.

언덕 위에서 함께한 피크닉.

그 문장이 흐릿했던 기억의 수면 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엉망이 되어버린 도시락, 당황하던 너의 얼굴, 그리고... 그럼에도 내게 수줍게 건네던 사과 한 알. 그 모든 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네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장소를 다시 제안했다는 사실이 얼어붙었던 내 심장을 미세하게 녹이는 것 같았다. 그곳은 오롯이 우리 둘만의 공간이었다. 그 기억을 네가 소중히 여겨준 것만 같아, 벅찬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굳어있던 어깨를 폈다. 어지럽게 널려있던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핸드폰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너와의 약속만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 내가 그걸 어떻게 잊겠나."



나직이 혼잣말을 읊조린 후, 그는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



[네가 엉망으로 만든 도시락 대신 사과를 건넸던 그날 말인가? 좋아. 거기라면 방해받지 않고 볼 수 있겠지. 그럼 지금 출발할 테니, 너도 준비하고 오도록 해. 내가 먼저 가 있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복도에 깔린 붉은색 카펫 위로 길게 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휴대폰을 꺼내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 쓸었다.

'성유나'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네 연락처를 응시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전화를 걸까 잠시 망설였지만, 지금은 간단한 메시지가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마음을 정화라도 하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지난 잘못들을 만회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게 오직 변함없는 진심과 노력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망설이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지금 막 출발했으니, 곧 거기서 볼 수 있을 게야.]



문자가 전송된 후, 엘리베이터 문이 '띵'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는 그 안으로 들어서며 창밖으로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하늘 위 어딘가에, 이제 곧 빛나는 유성들이 쏟아져 내리겠지.

그 별들을 너와 함께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얼음 같던 내 심장에 아주 작고 따스한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과거의 불안함과 초조함은 잠시 잊은 채, 오직 너와의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차 안은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라디오 소리조차 거슬려 꺼버린 채, 오직 엔진 소리와 내 심장 소리만이 들려왔다.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자,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어 언덕 위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희미하지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돗자리 위에 홀로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이었다. 그 작은 형체를 발견한 순간,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잔디를 밟는 내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강지혁은 그녀의 뒤에 조용히 멈춰 섰다.

자신을 알아챌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너의 뒷모습과 어둑해지는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가 느끼는 추위가 내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네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



"... 왔는가."



나직하고 잠긴 목소리였다. 외투를 덮어주는 내 손길에 놀라 돌아보는 너의 눈과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밤공기가 차갑군.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아... 별로 오랜 안 기다렸어요 저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고요"



"...."



너의 대답이 밤공기 속으로 흩어지고, 우리 사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짧은 침묵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네가 고개를 돌려 옆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 찰나의 순간, 내 심장은 차갑게 가라앉는 듯했다. 역시, 내 존재 자체가 아직은 불편한 것이겠지. 그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레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너의 목소리는, 얼어붙었던 내 세상에 가느다란 균열을 냈다.



"... 여기 앉으면 돼요."



나를 위해 비워둔 자리. 그 작은 공간이 어째서인지 세상 그 어떤 왕좌보다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네가 내어준 온기가 희미하게 남아있을 그 돗자리 한편에 천천히 몸을 내렸다. 옷감이 스치는 소리만이 정적을 가르고, 우리는 어깨가 스칠 듯 말 듯 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란히 앉았다.

너의 시선이 내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외투를 벗어준 탓에 얇은 셔츠 차림인 내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그 눈빛. 그 안에 담긴 것이 걱정인지, 혹은 다른 어떤 감정인지 가늠하려 애썼다. 낯선 감각이었다. 누군가 나를 이토록 순수하게 염려해 준다는 것이.



"……."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막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의 시선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너의 그 작은 배려에 어설프게 동요하는 내 표정을 감추고 싶었을 뿐이다.



"괜찮아."



한참 만에야 겨우 뱉어낸 말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잠겨 나왔다.



"네가 춥지 않은 편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내뱉은 말 끝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머플러에 폭 파묻힌 하얀 뺨과, 까만 밤하늘을 담은 너의 눈동자. 그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나는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머플러를 천천히 풀기 시작한다.

양손으로 머플러를 펼 처서 그의 목에 둥글게 감싼다. 따스한 천의 감촉이 그의 목 부근을 감싸 안듯이 둘러주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 해진 머플러와 비교되게 두껍고 질 좋은 천 쪼가리의 따듯한 머플러였다.

몇 주 전 그에게 상처받은 날들과 다퉜던 흔적이 후유증처럼 남아있는지 아직 그와 어색함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지만,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그를 보며 아주 미세하게 웃음 지어본다.

집중해서 쳐다보지 않으면, 아니 집중하고 쳐다봐도 미소 짓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전 머플러 안 매도 돼요."



"둘러주신 코트가 커서 깃이 목까지 닿거든요."



나는 멍하니 너의 손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네가 서서히 목에서 머플러를 푸는 그 모습, 그리고 주저 없이 펼쳐든 머플러를 내 목으로 가져오는 모든 동작이 느린 장면처럼 느껴졌다.

순간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네 온기 어린 손가락이 목덜미에 스칠 때마다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그것은 공포나 분노가 아닌, 너무나 낯선, 말랑한 감각이었다. 내가 감히 느낄 자격조차 없는 따뜻함. 너무도 아련하고 아픈 동시에, 미치도록 그리웠던 온기였다.

두껍고 질 좋은 천의 감촉이 내 목을 감싸자, 며칠 전부터 온몸을 휘감던 씁쓸한 공허함이 그 촉감 하나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너의 머플러는 따뜻한 노란 달빛 아래, 그 시절의 빛바랜 흔적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그때 내가 두르고 있던 낡고 해진 머플러, 불에 그을려 터져 버릴 것 같았던 창고 안의 기억들… 그 모든 파편이 찰나의 순간, 내 눈앞에서 다시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오직 너의 눈동자만이 희망처럼 빛나던 그 순간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그때는 네가 위험에서 날 구해냈고, 지금은... 내가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과거였다.

그런데도 넌, 여전히 아무런 조건 없이 내게 온기를 건네고 있었다. 나의 오만하고 무례한 행동으로 인해 네 안에 켜켜이 쌓였을 불신과 실망감, 그리고 차가운 절망까지…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넌 내게 따뜻함을 선물했다.

너의 시선이 내 목에 매듭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동안, 나는 겨우 들숨을 들이켰다. 내 죄의 무게에 짓눌려 터져 버릴 것 같던 가슴속이, 이 작은 온기 하나로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나는 머플러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애써 담담한 척 시선을 애매하게 돌렸다.

'내가 네게 이렇게 과분한 배려를 받아도 되는 걸까? 아니, 받아선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죄책감이 머릿속을 점령하는 사이 네가 시선을 거두고, 나를 마주 보았다.

너무도 미세한 너의 미소. 어둠 속에서, 혹은 나의 눈이 겨우 알아차릴 만큼 희미하게 번진 그 웃음.

그 짧은 순간의 미소에 나는 다시 한번 심장이 멎는 듯했다. 네가 아직 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약속 같았다. 그리고 그 약속에 기대어, 비로소 나도 조금쯤은, 다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목을 감싸고 있는 머플러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쓸었다. 질 좋은 천의 감촉이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졌다. 네 웃음에 내 안에 쌓여 있던 오랜 불신과 자기혐오가 한순간에 바스러져간다.

언덕 위에 부는 차가운 밤바람도, 더 이상 내게는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네 웃음 한 조각이 모든 것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 네가 웃는 모습을 보니, 이 밤이 더욱 따뜻해지는 것 같군."



나는 억눌린 감정으로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한 건가?"



"...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옛날 생각. 네가 떠올리는 '옛날 생각'과 내가 떠올리는 '옛날 생각'의 무게는 이토록 다를 것이다.

나는 차마 너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어, 너를 따라 고개를 들어 완전히 어둠에 잠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칠흑 같은 먹물을 부어놓은 듯한 하늘. 그러나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별들은 역설적으로 더욱 찬란하게 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의 관계처럼.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야 비로소 희미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강지혁 씨는 유성이 떨어지는 걸 본 적 있나요? 전 아직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래서 볼 수 있다면 당신이랑 꼭 같이 보고 싶었는데..."



".... 아직 유성이 보이진 않네요."



나 같은 놈과, 네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고? 내가 너에게 안겨준 것이라고는 상처와 실망뿐이었는데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마른 입술을 열었다.



"… 아니, 나 역시 본 적 없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낮고 거칠게 새어 나왔다. 나는 애써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언제나 위를 올려다보기보단, 내 발밑의 것들을 좇으며 살아왔으니… 밤하늘에 그런 장관이 펼쳐지는 것조차 잊고 살았지. 언제나 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자조적인 미소가 입가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나는 시선을 너에게로 옮겼다. 어둠 속에서도 너의 눈동자는 유독 반짝였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별들을, 나는 이제야 겨우 발견한 참이었다.



"… 보고 싶었다니, 다행이군. 나 역시… 오늘 밤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너를 온전히 바라보았다.



"괜찮아. 유성이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네가 내 옆에서 함께 이 하늘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가장 눈부신 순간이니까.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유성이 떨어질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주자."



"그러죠 기다리다 보면 유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겠죠."



우리는 또다시 말없이, 오직 밤하늘의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네 옆에 앉아 있다는 현실감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내 목을 감싼 머플러의 부드러운 감촉을 매만졌다.



"지금 여기서 유성이 떨어지는 걸 본다면... 지혁 씨는 소원 빌 거예요?"



소원.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

나는 원하면 가졌고, 뜻하면 이루었다. 소원이라는 것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나약한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그렇게 치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앉은 너, 성유나. 너는 내 힘으로 가질 수도, 내 뜻대로 이룰 수도 없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에 너를 얻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썼고, 너를 곁에 두기 위해 끔찍한 상처를 주었다.

그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게 단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그래, 만약 내게 소원을 빌 자격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내 소원은 단 하나뿐일 터였다.



"… 소원이라."



"과거의 나는 그런 걸 믿지 않았겠지. 원하는 것은 쟁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하지만 지금은… 빌고 싶은 소원이 딱 하나 생겼군."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내 소원의 내용은 감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염치없으며, 너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는 말이 될까 두려웠다. 그저 침묵으로 내 간절함을 전할 뿐이었다.



‘너와 나의 시간이 다시 시작되기를. 너의 상처가 아물고, 네가 나를 보며 진심으로 웃어주는 날이 오기를.’



차마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그 소원을, 나는 떨어질지 모를 유성을 향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저도 소원이 있어요. 아주 간절한 소원. 원래 소원은 비밀이니까 말은 안 해줄 거예요."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본다.



"봤으면 좋겠다..."



네 목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간절함이 전염된 것처럼, 나 역시 무의식 중에 숨을 죽이고 밤하늘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저 하늘이 보여줄 마지막 선물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내 안에 일렁이는 불안감과 희미한 희망이 얽혀 들어, 온몸이 긴장감으로 얼어붙는 듯했다. 지금 이 순간, 너의 곁에서 유성우를 기다리는 것만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의 행위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요하던 하늘은 여전히 검푸른 장막을 드리우고, 별들은 그 속에서 작은 점으로 반짝일 뿐이었다. 기대감이 한계에 달했을 무렵, 거짓말처럼, 한 줄기 빛이 밤의 장막을 찢고 나타났다.




서쪽 하늘 어딘가에서, 처음에는 실처럼 가늘고 창백했던 빛줄기가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은색 붓으로 휘갈겨 그린 듯, 찰나의 순간 길게 늘어졌다가 사그라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잠시 후, 북동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두세 줄기의 빛이 동시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황금빛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우아하게 미끄러져 내렸고, 또 하나는 푸른빛 섬광을 터뜨리며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밤하늘이 거대한 창문이라도 되는 양, 그 유리창 너머에 펼쳐진 태초의 빛의 축제가 열린 것만 같았다.




이제 하늘의 검푸른 어둠은 이제 빛의 파편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허공에 보석이라도 뿌린 것처럼, 사방에서 크고 작은 유성들이 쏟아져 내렸다.

희미한 옥색부터 불타는 듯한 붉은색, 번개 같은 은백색까지, 다채로운 빛의 조각들이 마치 하늘의 눈물처럼 빠르게 낙하했다.

각각의 유성들은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밤하늘을 가로질렀고, 어떤 것은 짧고 굵게 스쳐 지나가는가 하면, 어떤 것은 마치 영원을 그리는 듯 아련한 꼬리를 남기고 사라졌다.

밤의 침묵을 찢는 듯한 황홀경 속에서,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이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장엄하고도 애잔한 아름다움. 그것은 마치 존재와 소멸의 경계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가 품고 있는 덧없는 희망을 형상화한 듯했다.

너무도 눈부셔서 시야가 아릿해질 정도였다.

내 옆에서 이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 있는 너의 존재가, 유성우의 황홀경을 더욱 압도하는 빛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의식 중에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모든 빛을 담은 듯한 너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경이로움과 벅찬 감동이 가득했다.

네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다만 너의 얼굴에 드리운 옅은 미소가, 세상의 모든 어둠을 녹이는 가장 따뜻한 빛처럼 느껴졌다.

나의 소원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성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너를 향한 것이었다.

너의 모든 상처가 아물고, 네가 나를 보며 웃어주는 그 순간을,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빌었다.



"... 놀랍군."



나는 겨우 마른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렇게나… 눈부신 것이 존재했다니."


그러나 내 시선은 하늘을 스치는 유성우가 아닌, 내 옆의 너에게로 향해 있었다.

유성이 떨어진다 한들, 내게 가장 눈부신 것은 바로 너였다. 내가 품은 단 하나의 소원이, 밤하늘의 모든 유성보다 더 간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유성우가 떨어지는 광경을 경이롭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밤하늘의 모든 별빛이 네게로 쏟아져 내리는 듯, 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빛나는 별자리 같았다.

두 손을 경건하게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너의 모습. 찬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그 모든 풍경이 내 심장에 아프도록 선명하게 새겨졌다.

나는 차마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내 존재는 이 거룩한 기도 앞에서 한없이 작고 초라해졌다. 너는 지금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 걸까. 저토록 간절한 기도의 끝에, 과연 내가 존재할 자리가 있을까. 아니, 어쩌면 너는 나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이 지긋지긋한 굴레로부터의 구원을 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심장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지은 죄의 대가일 테니까.

너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 이윽고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다시 눈을 뜬 너의 보랏빛 눈동자는 유성우의 빛을 머금어 이전보다 더욱 깊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한참 동안 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나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가 너의 고요한 세계를 깨뜨릴까 두려워,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내 진심을 모두 담아서.



"…그 소원, 전부 이루어질 거다."



내 말에는 한 치의 의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맹세에 가까웠다.



"네가 저 하늘에 빈 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너의 어깨를 아주 가만히 감쌌다. 차가운 밤공기에 네가 조금이라도 떨고 있는 것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이 손길이 소유가 아닌 보호이고, 통제가 아닌 온기로 느끼길 바란다.



"비록 내가 너의 소원이 무엇인지 들을 자격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바라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내가 너의 곁에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지."



나는 너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내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이 흔들렸다. 그것이 유성우의 빛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감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마라. 그냥 지금처럼, 그렇게 빛나고만 있으면 돼. 나머지는 전부 내가 할 테니."



"..."



"고마워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혁 씨도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질 거예요."



네가 미소 짓는 순간, 쏟아져 내리던 유성우도, 스쳐 지나가던 밤바람도, 내 심장의 고동 소리마저도 전부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움직임이 사라지고, 오직 너의 그 희미하지만 분명한 미소만이 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멍하니 너를 바라보았다. 옅은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 미세하게 휘어지는 눈꼬리. 그 작은 변화가 내 얼어붙었던 세상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눈이 부실 만큼 따스한 빛을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지혁 씨도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질 거예요.' 그 축복의 말이, 내가 지금껏 들어왔던 그 어떤 찬사보다도 더 깊숙이, 내 영혼의 가장 연약한 곳을 파고들었다.

내 소원은 이미 이루어졌다. 내가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그저 마음속으로만 수없이 되뇌었던 '네가 나를 보며 진심으로 웃어주는 날이 오기를' 바랐던 그 간절한 소원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언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벅찬 감정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그저 너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너의 어깨를 감쌌던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스르르 풀렸다. 너를 더 꽉 붙잡고 싶은 욕망과, 이 기적 같은 순간을 깨뜨릴까 두려운 마음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나는 아주 천천히, 내 안에 차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 이미."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 소원은… 방금 이루어진 것 같은데."



나는 시선을 돌려 네 미소가 머물렀던 그 얼굴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그 미소 하나만으로도 지난 시간의 모든 고통과 후회가 보상받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더는 유성우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오직 네 얼굴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성유나."



나는 다시 네 이름을 불렀다. 이전과는 다른 무게와 온기를 담아. 네가 나를 돌아보자,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미소 하나가… 밤하늘의 유성우보다 더 눈부시다는 걸, 너는 알고 있나?"
(!!!!!!!!!!!!!!!!!!!!!!!!!!!!!!)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었다. 오만하고 뒤틀린 내 언어가 허락하는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진심이었다. 너의 그 작은 미소 하나가 내 세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 나는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그의 고백에 당황하며 볼이 붉어진다.

여전히 그의 말에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목 부근을 매만지며 말한다.



"설마... 제가 웃었으면 좋겠다고 소원 빈 거예요?"



네 갑작스러운 반응에 나는 입술을 살짝 올렸다. 예상했던 반응이었을까, 아니면 의외의 모습이었을까.

순간 붉어진 네 볼을 감싸는 차가운 밤공기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저 밤하늘의 모든 유성우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를 이토록 벅차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너만이, 이런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내 심장을 뒤흔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리고 그 간절함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충족되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글쎄, 굳이 내가 그런 것을 소원으로 빌 필요가 있었겠나?"



"네가 웃는 순간, 내 소원은 이미 저절로 이루어졌을 뿐이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억눌렀다. 지금껏 내가 세상을 대했던 방식, 그리고 너를 대했던 방식을 전부 되돌아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손에 넣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네가 나를 보며 웃어주는 이 순간의 작은 진심이라는 것을.



"그럼 지혁 씨도 웃어주세요."



'당신 미소도 저기 유성보다 더 눈부시고 아름다우니까요.' 내가 너에게 건넸던 말을, 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잃어버렸다.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어떤 공격도, 그 어떤 저항도 나를 이토록 무력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나는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조금의 거짓이나 동정도 없었다. 오직 맑고 투명한 진심만이 담겨, 흔들림 없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감당할 수 없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기쁨인가? 아니면 당혹감인가.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생경한 감정의 파도가 나를 집어삼켰다.

웃어달라고. 네가 내게 웃어달라고 했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그런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웃음은 내게 통제와 권력의 수단이었지,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너는...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나는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마침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너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정말 아주 희미하게, 내 입꼬리가 위로 끌어올려졌다.

그것은 비웃음도, 냉소도 아니었다. 어색하고, 서툴고, 어쩌면 볼품없을지도 모르는, 그러나 내 생애 가장 진실된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지은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



목소리가 잠겨있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 내 소원은 이미 과분할 정도로 이루어진 것 같군."



미소는 금세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내 얼굴에, 그리고 심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너의 어깨를 감쌌던 손을 내려, 대신 너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너의 작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가, 방금 전 나의 어색한 미소보다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방금 그 말, 잊지 않도록 하지. 다음에 또 내가 웃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줘야 할 테니."



그것은 협박처럼 들릴 수도, 혹은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앞으로도 너와 함께 이런 순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



그렇게 둘은 유성우를 보던 중, 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의 잔치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어라 이제 유성우가 잘 안 보이네요."



아쉬운 듯이 하늘을 쳐다본다.



"그래도 오늘... 좋았어요 당신이랑 보니까 더 특별하고."



흩어지는 유성의 흔적을 아쉬운 듯 쫓는 너의 옆모습을, 나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짙은 밤의 푸른빛이 너의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네가 던진 그 말들이, 잦아드는 유성우의 잔상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내 마음에 박혔다.



"안 그래도 요새 일 많으신 거 같아서 바쁜데 괜히 불렀나 싶었는데... 올해 마지막 유성을 보게 된 거 같아 좋아요."



너는 내가 바쁜 것을 걱정하고 있었군. 내가 너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을 '괜한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잡고 있던 너의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은 그 어떤 중요한 계약이나 회의보다도 절실했으니까. 너는 아직도 모르는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잡고 있던 너의 손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오게 했다. 그리고 시선을 너의 눈에 맞추며,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괜한 일이라고 생각했나?"



나는 픽, 하고 짧게 웃었다. 이번에는 조금 전의 어색한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희미한 웃음이었다.



"오늘 이 시간이 아니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가장 후회할 뻔한 일을 내가 놓치지 않게 해 준 건 바로 너야. 성유나."



"그리고... 나 역시 오늘이 특별했어. 유성우 때문이 아니라, "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잡은 손을 들어 올려 너의 붉어진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었다.



"네가 내 옆에 있었기 때문이지. 앞으로도 내 모든 특별한 순간은... 네가 만들어주게 될 것 같군."



밤의 언덕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우리 사이의 공기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하고 충만했다.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내년의 첫 유성도, 너와 함께 봐야겠어. 그러니... 그때도 내 옆에 있도록 해."



"그러죠."



그녀는 그가 덮어준 코트깃을 단단히 여맨 후 천천히 자리에 일어난다.



"그럼 이제 집으로 갈까요."



"정신없이 밤하늘 보다가 추운 것도 모르고 있었네요."



잠시 망설이다가 앉아있는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네가 내민 손. 그 작은 제스처에 담긴 의미는, 어쩌면 오늘 밤의 유성우보다 더 눈부신 것이었다.

나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내 손을 들어 너의 손을 잡았다.

너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그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히 잡았다. 우리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얽혔다.



"그래, 이제 돌아가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봤다. 한때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고독을 씹어 삼켰던 나였지만, 이제는 너의 손을 잡은 채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끝나는 것이 아쉽군."



언덕에서 내려가는 길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네 손을 놓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에는 좀 더 따뜻한 곳으로 데려갈게. 추위에 떨지 않고도 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았지?"








그것은 명령이 아닌, 약속이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너와의 다음 약속.










[2025-12-14 02:02:07] 밤에 유성우 보기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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