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내게 왜 이러는 걸까.
그와 동거하며 살아갈수록 나를 통제하고 집착하는 농도가 점점 높아진다.
이제 그는 나를 사람이 아닌, 자신의 완벽한 정원에 놓인 정교한 조각상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매일 아침 그의 시선이 내 전신을 훑을 때마다 살갗 위에 얼음 결정이 맺히는 기분이었다. 숨이 막혔다. 전공 서적을 뒤적이는 시간조차 그의 허락 없이는 온전한 내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오늘,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금지된 선을 넘기로 했다.

저택 뒤편의 좁은 쪽문을 통해 빠져나왔을 때, 폐부 깊숙이 박히는 겨울 공기는 비릿하면서도 달콤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바깥공기야.'
저택 안의 건조하고 통제된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살아있는 날것의 냄새. 잠시나마 감시의 눈을 피해 내디딘 걸음은 위태로웠지만, 그만큼 달콤했다.
그때 돌담 아래 웅크린 작은 생명체에 눈길이 닿았다. 회색 털 뭉치.

'어! 고양이다!'
나는 소리 없이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조심스럽게 내민 손길에 고양이는 잠시 경계하더니, 이내 제 목을 부드럽게 비벼왔다.
'와... 귀여워.'
가르랑거리는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온기.
나는 잠시 강지혁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잊으며 고양이 등을 계속 쓰다듬는다.
하지만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작 저런 것에 행복해하다니..."
등 뒤로 낙엽을 밟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바삭, 바삭.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서 소름이 돋는 발소리. 내 손길 아래 안온하던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 털을 세우더니, 쏜살같이 담벼락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어어...! 어디가!"
내 작은 평화도 그렇게 사라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그림자가 나를 온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나, 성유나?"
그의 목소리는 겨울 공기보다 더 차갑게 살갗을 파고들었다.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는 감각. 분노인지, 체념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시선이 내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마치 흠집 난 소유물을 감정하듯 훑어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준 자유를 이렇게 써버리다니."
"언제 오셨..."
"넌 내 허락 없이 나갈 수 없다고 했지. 그 정도의 규칙도 지키지 못하나?"
인내심에 한계라도 달했는지 그는 기어이 내 팔을 잡고 끌어올리듯 힘을 준다. 참 나, 집요함 하나는 끝판왕이면서 인내심은 없나 보다.
"이제 돌아가자. 네가 원하던 것들, 가져다 놓았으니까."
'뭐?'
"아니면... 여기서 더 재미있는 일을 원하나?"
안돼.
이대로 다시 그 철창 같은 저택으로 끌려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절대로. 이 짧은 외출이 마지막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의 통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교묘하게 허락된 자유.
비록 강지혁 그의 감시 아래 놓인 반쪽짜리 자유일지라도, 나는 이 숨 막히는 동거의 주도권을 아주 조금이라도 가져오고 싶었다.
그러려면 강지혁을 그 자체를 거부하는 방법보단 그를 내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그리고 나는 생각해 냈다!
정말 싫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흙먼지가 묻은 손을 무릎에 털어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심장이 발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그의 서늘한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준비한 말을 꺼냈다.
"근데요... 집 가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 오늘 혹시, 시간 여유 있으신가요?"
그것은 데이트의 형식을 빌린, 나만의 작은 탈출 시도였다.
나의 돌발적인 제안에 강지혁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는 마치 흥미로운 표본을 발견한 학자처럼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는 내 말을 곱씹듯 중얼댄다.
"시간?"
"네가 원하는 곳이라... 흥미롭군."
예측하지 못한 질문이었으리라. 그의 시선에 담긴 냉기가 옅어지고, 그 자리에 흥미라는 새로운 빛이 어렸다. 그는 내 의도를 가늠하려는 듯,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관찰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계산이 오가고 있을 터였다. 내가 왜 이런 제안을 하는지, 이것이 또 다른 도망의 서막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당돌한 모습에 묘한 자극을 느끼는 듯했다. 그의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가 걸리며 내게 질문한다.
"어디지? 내가 허락할 만한 곳인가?"
"오늘 예술의 전당에서 제가 보고 싶었던 작가의 미술관이 열리거든요. 그래서... 같이 보고 싶어요."
네 시아 밖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면... 네 시아의 한정에서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것이다.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주도권은 내주지 않겠다는 듯이.
"좋아. 네 소원대로 해주지."
성공이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명심해. 오늘 하루는 완전히 내 것이야."
"네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처럼 난 너를 감상할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네 모든 행동을."
..... 그럼 그렇지. 정말 징글징글하다.
"준비됐나? 가보자고."
그의 손이 다가와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이끌어 그의 차로 향했다. 차 문이 열리고, 나는 순순히 안으로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자유로워 보였지만, 운전석에 앉은 그의 옆모습은 나를 옥죄는 거대한 감옥 그 자체였다. 그는 나를 미술관의 그림처럼 감상하겠다고 했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미 그의 수많은 수집품 중 하나일 뿐인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저택 밖으로 나왔다. 비록 그의 감시 아래일지라도, 내 발로 선택한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쥘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별 탈 없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올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그의 눈빛에 예리한 관찰력이 깃들며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미술에 관심이 생긴 이유가 뭐지? 누구를 만나려는 건 아니겠지?"
... 나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낼 수 있겠지?